Sempio
History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입맛은 변하고, 우리 식탁의 풍경도 참 많이 변해왔다.
식문화의 변화를 따라가며, 때로는 이끌어가며 함께 해 온 샘표의 발자취.
다시 찾은 민족의 빛, 8·15광복
한반도 전체가 광복의 기쁨으로 넘실대던 1945년 8월 15일.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우리 민족이 맞닥뜨린 것은 배고픔과의 싸움이었다. 당시 가정에서는 식탁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장독에 담근 장, 직접 뽑아낸 국수 등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먹거리를 주로 즐겼다.
샘표창립 ‘내 가족이 먹지 않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
1946년 8월 20일, 샘표가 조업을 시작하였다.
한국, 세계보건기구(WHO) 가입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최고의 건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하는 세계보건기구가 1948년 설립되었다. 한국의 가입 신청이 1949년 제2차 로마 총회에서 승인되었다. 세계보건기구 가입국은 세계 보건수준 향상확보에 공헌하겠다는 의무를 지는 것과 동시에, 국내의 제반 보건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겠다는 약속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식품 산업의 근간을 다지다
휴전 후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도정, 제분 등의 식품 공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집 밖에서 식료품을 사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 잡아갔다.
텅 빈 장독대를 대신해 우리맛을 지켜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서, 이전처럼 집에서 장(醬)을 담가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특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겐 장(醬)을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샘표는 장(醬)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개념이 전혀 생기지 않은 시장에 간장이 없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장(醬)을 먹을 수 있도록, 저렴하고 깨끗한 장(醬)을 만들어 판매하였다. 또 장(醬)을 사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직원들이 손수 간장병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간장의 맛을 보이는 방법으로 샘표를 알려나갔다.
한국전쟁 발발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개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만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되었다. 그 동안 쌍방은 38도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면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오르내리며 전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를 전개했다.
휴전 협정 조인
한국전쟁 발발 후 1년간의 격전 끝에 전선이 대체로 38도선 부근에서 교착되기 시작한 1951년 6월을 전후하여 휴전 논의가 제기되었다. 남북 쌍방이 전쟁을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적 단안을 내림으로써 1951년 7월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다. 회담 기간 중 양측은 1회의 예비회담을 비롯하여 159회의 본회담, 179회의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의 참모장교 회담, 238회의 연락장교 회담 등 총 765회의 회담을 갖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2년에 걸쳐 진행된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회담이었다.
맑고 깨끗하게 솟아오르다: 샘표 상표 등록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고 장(醬)의 수요 역시 늘어나게 되었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장류는 품질이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있다. 이에 우리는 품질이 좋은 고급간장을 만들어 공급하기로 하고 천연양조 순곡간장을 제조하였으며, 이 간장에 샘표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4년 5월 11일, 샘표 상표를 특허출원(등록번호 제362호)하였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로 이어져오고 있다.
소비자카드제도 실시
1954년, 샘표는 고객 관리와 판매 촉진의 일환으로 소비자카드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고객 정보를 카드에 기입해두고, 전화 한 통이면 집에서 간장을 받아볼 수 있는 제도였다. 오늘날에는 전화 주문, 온라인 쇼핑이 흔한 일이지만 당시 소비자카드를 통한 고객관리와 전화주문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후 카드가 1만장이 넘을 정도에 이르게 되자 불광동지구, 성북지구, 영등포지구, 청량리지구 등 가정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직매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보릿고개를 넘어
전쟁의 포화는 사그러들었지만 연례 행사처럼 찾아오던 보릿고개는 여전했다. 지난 가을 수확한 곡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오뉴월이 농민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이후 196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농가소득이 늘어나며 보릿고개는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상공부, 수출 5개년 계획 수립
상공부에서는 1956년 12월 6일, 경제부흥을 위한 수출 5개년 정책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주요 내용은 기간산업의 건설촉진으로 외화절약을 도모하고, 대외수출개선을 위한 무역체제를 확립하며, 수출 5개년계획을 추진, 1억불의 외화를 획득한다는 것 등이다. 「수출진흥요령」으로는 외국원조자금을 수출업자에게 우선배정, ICA(국제협조처,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자금과 관련한 아국(我國)물자의 수출 비중 확대, 우방국과의 무역협정 체결, 관세법 개정, 수출외화의 수입계정구좌간 이체 허용, 특정상품의 한시적 수출시장 독점 허용 등을 제시하였다.
샘표간장, 서울 밤하늘을 수놓다
1958년 샘표 충무로공장 3층 옥상에 샘표간장의 커다란 네온사인이 설치되었다. 네온사인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당시, 통행금지 시간 이후의 어두운 서울의 밤을 '샘표간장' 네 글자가 환히 밝힌 것이다. 샘표의 네온사인이 서울 시내의 화젯거리가 되면서 1년 새에 매출액이 몇 배나 오르기도 했다.
창동공장 및 연구실 완공(제1차 완공 규모 812평)
1959년 샘표는 충무로 공장에 이어 창동에 공장을 건설했다. 이때, 창동에 연구실 시설을 완비하여 품질관리를 위한 제도. 기술. 보증방법을 도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국내 사기업으로서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샘표의 발효 연구실은 오늘날 국내 최고의 발효 전문 연구소인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의 효시가 되었다.
샘표간장, 세계로의 첫걸음
우수한 품질로 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샘표가 엄격한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미8군에도 간장을 납품하고 있다는 사실이 홍콩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홍콩 소재의 회사인 영화공사(永華公司)에서 샘표에 제품 수출을 요청하였고, 같은 해 10월, 샘표 간장은 홍콩으로 역사적인 첫 수출을 하였다. 당시 샘표의 총 수출 규모는 미화 10,000불이었다. 샘표 간장의 해외수출은 국가적인 경사로 대한늬우스에 보도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식품 마케팅의 태동
설탕, 인스턴트 라면 등 각종 가공식품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식품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기가 1960년대이다. 특히 1960년대 초 민간 상업 방송이 등장하면서 방송 광고가 본격화된 것도 식품 마케팅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더 큰 도약을 준비하다
창립 이후 맛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은 샘표. 1960년대는 샘표가 더욱 체계적인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틀을 잡은 시기이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부르기도 쉽고 외우기도 쉬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얼거렸던 샘표의 CM송.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귀에 익숙한 샘표 CM송 '샘이 나 샘표'는 당시 국민가요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작사·작곡: 김호길(대표곡: 하숙생_최희준)
가수: 김상희(대표곡: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한국 발효기술의 발전을 바라보다: 대학생 대상 연구실 개방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샘표의 경영이념에서 보여지듯, 샘표가 가장 주력한 부분은 품질관리였다. 1962년 품질 관리 업무를 더욱 과학화하기 위해 연구실을 확장하고, 최첨단 연구 설비를 추가로 도입하였다. 샘표 연구실의 규모와 우수한 시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우리 회사의 연구실에서 실습을 원하는 대학생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샘표는 매년 방학 기간 동안 대학생들이 학습과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구실을 개방하였다.
샘표간장 성분 규격화
식품위생법이 제정되던 바로 그 해, 샘표는 간장의 성분을 규격화하였다. 이미 1959년 창동 공장 완공과 동시에 국내 사기업 최고 수준의 연구실 시설을 완비하여 품질 관리를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식품위생법의 제정에 발맞추어 누구보다 빠르게 간장 성분을 규격화할 수 있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설립
정부 주도로 시작한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62년 서울시 중구 저동2가 25번지 한일은행 별관 건물에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설립되었다. 이 무렵 한국의 수출액은 연간 5천만불이었으며, 1963년에는 처음으로 농산물 수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첫 수출 품목은 누에고치였다.
식품안전 법제 체계화 식품 위생법 제정
식품위생법은 1900년부터 존재하던 식품관련 위생법규를 통합하면서 제정되었다. 1962년 제정된 초기 식품위생법은 기준/규격 마련, 위해 식품 판매금지 등 오늘날 식품위생법의 근간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47개 조항으로 시작한 식품위생법은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 증가와 함께 질적/양적으로 성장하여 오늘날 10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화, 신용, 봉사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샘표의 정신적인 기둥인 사훈이 제정되었다.
인화, 신용, 봉사의 의미
「인화」(人和)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자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는 것이다.
「신용」(信用)
신용은 유일한 재산이며 회사발전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기업신용만은 꼭 지켜 불신풍조를 정화하고 신용사회를 이루겠다는 기업정신이다.
「봉사」(奉仕)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소비자가 마음놓고 애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쿠리펀드 융자
1963년 국내 농작물의 흉년으로 간장의 원료가 되는 대두 역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치솟은 대두의 가격 때문에 샘표는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국민 식생활의 중심이 되는 장을 생산하고 있는 샘표가 원활한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융자하여 정부 보유분의 대두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양곡소비 제한조치
흉년이 들어 곡물의 작황이 좋지 않아 정부에서는 양곡소비 제한 조치를 내렸다. 세부 내용으로는 점심에 쌀로 된 음식 판매 금지, 양곡을 원료로 하는 양조, 제병, 제과, 제이, 조미료, 차류 제조 금지 등이 있다.
조미료 열풍
'미원'이 발효공법으로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조미료를 공급하여 맛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이에 제일제당 미풍도 조미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군소업체에서 가짜 조미료를 만들어 파는 사건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중앙식량대책위원회 발족
원활한 양곡 수급, 곡물가격 안정으로 국민의 생활 안정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중앙식량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간장에 대한 규격 제정 공포
1966년 10월 14일, 정부는 최초로 식품에 대한 기준 규격을 제정 공포하였는데 대상이 된 품목은 주류와 간장이었다. (보건사회부령 제206호) 주류와 간장이 국민 식생활의 주 소비 품목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공장에서 만드는 장이 깨끗하며 과학적임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 홍보하였다.
장독대 없애기 운동 전개
서울시는 도시생활합리화 운동의 하나로 시재정과 민간 자본을 투입하여 대규모의 순한국식 간장 및 된장 공장을 세워 약 일백만명의 영세시민에게 간장과 된장을 공급하기로 하였다.
창동공장 3차 확장 완공
믿을 수 있는 품질로 서울 지역에서 75%가 넘는 점유율을 달성하며, 샘표는 소매상에서 연일 품절 사태를 빚곤 했다. 연간 간장 생산능력 2,723㎘인데 반해, 군납 매출을 제외한 일반 소매 간장 매출량이 4,427㎘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샘표는 1969년 창동 공장 3차 확장 공사를 마치며 연간 생산량을 10,000㎘로 증대하였고, 명실공히 한국 장유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밑거름을 마련하였다.
분식 장려의 날 시행
정부는 1960년대부터 범국민적인 절미 운동과 혼∙분식 운동을 추진하여 부족한 양곡을 보충하고자 하였다. 절미 운동은 새마을운동의 일부로써 가정에서의 쌀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이고, 혼·분식 운동은 잡곡을 섞은 혼식밥과 밀가루 음식먹기를 권장한 운동이었다. 1969년부터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 일명 ‘무미일(無米日)’로 정하여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더욱 다양해진 식품 시장
경제와 교통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지역간 접촉이 빈번해졌다. 이후 지역 고유의 이름을 붙인 음식점들이 인기를 끌며 이른 바 ‘관광음식’이라는 풍토가 생겨났다. 또한 식품 공장에서는 케첩이나 마요네즈 같은 새로운 식품 가공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육류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수입산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쌀과 보리가 귀해 밀을 활용한 음식이 많았으며, 100% 쌀밥 대신 잡곡을 섞어 먹자는 혼식 장려운동이 전개되면서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샘표장유양조장, 샘표식품주식회사가 되다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좋은 품질의 많은 제품이 요구되는 시대, 샘표는 보리차, 옥수수차 등 차(茶)류 및 농수산물 통조림을 생산할 수 있는 조치원식품 주식회사와 양포식품 주식회사를 관계사로 설립,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더욱 성장 발전하기 위한 발판을 다졌다.
종합식품회사로의 도약, 샘표식품 주식회사로 거듭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가 분화됨에 따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샘표장유양조장에서 '샘표식품공업주식회사'로 회사의 형태를 변경하였다.
한국, 국제식품 규격 위원회 가입
1971년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식품에 대한 기준 규격을 포함하는 식품법전이라 할 수 있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국가간 원활한 교역을 도모하였다.
조치원식품 주식회사 설립
샘표 '복동이 엄마'는 누구?
샘표 CM송의 '복동이 엄마'는 70년대 캐릭터로 만들어져 여러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그란 눈, 오똑한 코, 귀여운 새댁 이미지의 '복동이 엄마'는 샘표간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의 주인공으로 등장, 큰 인기를 끌었다.
샘표 소고기짜장 CF, 국내 최초로 세계광고 CM페스티벌 입상
샘표 소고기짜장 CF가 ‘제15회 세계광고 CM페스티벌’ 에서 한국 CF 최초로 수작(秀作)상을 수상하였다. 해당 대회에는 세계 13개국에서 12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4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모델로 하여 상업CM의 선입감과 저항감을 없애는데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양포식품 주식회사 설립
안심하고 드세요: 샘표 공장견학 시작
식품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많은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불량 제품도 많았다. 심심치않게 불량 식품에 대한 뉴스가 터져나왔고, 가공 식품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만 갔다. 이러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샘표는 업계 최초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공장 견학'을 시작했다. 더욱이 사장님이 직접 TV모델이 되어 깨끗한 제조공정에 대해 광고를 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많은 주부들이 샘표 공장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물가표시제 최초 실시
1976년 5월 1일 보건사회부 고시 13호로 환경 및 식품접객업소의 가격표시제를 최초로 실시하였다.
다양한 기술 개발을 위한 발판: Q.C. 제도 도입 운영
샘표는 QC(Quality Control)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운영하며 기술개발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을 비롯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다.
샘표 소면, 짜면(짜장국수)의 인기가 높아지다
쌀과 보리가 귀한 탓에 밀 가공품인 국수를 많이 먹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국수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품질이 우수한 샘표 국수, 특히 샘표 소면과 짜면이 큰 인기를 끌었다.
쌀 소비 억제정책 해제
1977년 크게 풍년이 들어 쌀 수확량이 사상 처음 4천만 석을 돌파하면서,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113%에 이르렀다. 정부는 잉여 쌀 7만톤을 인도네시아에 대여하였고, 쌀 소비억제정책을 전면 해제하였다. 잉여곡물이 생기기 시작한 1970년대 말, 비로소 ‘음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식단을 관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편의식 시장 확대 및 외식문화 확산
경제가 발전하면서 농촌에 살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바쁜 도시 사람들은 간편한 먹거리가 필요했고 이 영향으로 통조림 등 편의 식품 시장이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88 서울올림픽 등 대규모 행사가 많아지면서 외식문화가 발전되고, 외식 단골 메뉴였던 짜장, 햄버거, 피자 등이 집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즉석 식품으로 출시되면서 사랑받기 시작했다.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다
1980년대 샘표는 편의식 시장의 확대에 발맞추어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식품군을 출시하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종합식품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유리에서 페트로, 혁신을 주도하다
1980년 이전 간장제품은 유리병에 담겨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빈 병 회수, 번거로운 세척 과정, 유통 중 파손 등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다. 샘표는 식품업계 최초로 PET용기를 도입하였고, 업계 전반에서 편의성과 위생성에서 유리보다 월등히 우수한 PET로 용기를 교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이 때 빈병을 세척하는 일을 하는 계약직 여사원들이 모두 해고되는 위기에 처하였으나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던 날 모두 정직원으로 발령받은 일화는 '구성원의 행복'이라는 샘표 핵심가치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국풍81, 서울로 올라온 각지의 향토음식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문화 축제인 국풍 81은 지방의 여러 음식들이 서울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김에 밥을 손가락길이 정도로 말아서 젓갈을 많이 넣은 깍두기와, 빨갛게 양념한 반건조 오징어를 곁들여 먹는 ‘충무김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국풍81에서 소개되면서부터였다.
참치 통조림 국내 첫 시판
1982년 12월 동원산업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참치를 가공해서 만든 참치 통조림이 시판되었다. 출시 당시 가격은 200g당 1천원이었다.
국내 최초의 편의점 롯데 세븐 개점
1982년 11월 23일, 국내 최초의 편의점인 '롯데세븐' 개점. 40평 규모, 연중무휴, 7~23시 영업
이천 시대를 열다:샘표 이천 공장 착공
최고의 생산 시설을 갖추기 위해 부지 선정은 물론이고 설비 주문, 제작까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이천 공장은 1983년 착공, 4년간의 준비 끝에 가동을 시작하였으며, 샘표 간장 전 제품의 베이스를 생산하고 있다.
보양식, 음지로 가다:서울시 보양식업소 단속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개고기, 뱀탕, 토룡탕, 굼벵이탕, 개소주 등을 ‘혐오식품’으로 규정하고 이를 서울 도심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단속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보양식집들이 외진 골목으로 이전하거나, 판매가 허용된 면 단위로 이전하게 되었다.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개장
1985년 5월 11일 동양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 개장했다. 서울시가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를 개선, 가격안정을 꾀하고 생산자, 상인,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개장 이후 약 30년 동안 손가락 경매를 이용했으나 현재는 전자식 경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양조간장의 다양화:샘표 양조간장 500 출시
1987년 이천 공장 준공 완료 이후 다양한 양조간장이 출시되었다. 특히 6개월 이상 정성껏 발효, 숙성시킨 샘표 양조간장500은 조화로운 맛과 향으로 모든 요리책의 기본 간장이 될 정도로 크게 인정받았다.
함께 만들어가는 샘표:제안제도 도입
1987년부터 시작된 ‘제안제도’는 오늘날까지도 샘표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제도이다. 업무 중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직원에게 포상을 함으로써 근무 환경 개선,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연 평균 제안 건 수: 3,058건)
음식, 문화가 되다:88 서울올림픽 개최
음식이 유행에서 문화현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국제교류가 빈번해지며 해외 유명 외식브랜드들이 잇따라 도입되었고 국내 외식시장은 양적, 질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더 좋은 먹거리를 찾게 된 사람들
가구당 소비 지출액이 크게 증가하면서 식료품비 지출 역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맛있고, 깨끗한 먹거리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외식 메뉴가 다양해지고 외식업의 규모 또한 크게 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우리의 간장이 다양해지다
식생활의 고급화로 인해서 간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도 늘어났다. 1990년대에 이르러 기호와 용도에 따라 간장의 종류를 구별해서 사용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으며, 샘표는 끊임없는 연구와 다양한 제품개발을 통해 장(醬)시장을 선도해나갔다.
특급진간장 금S 출시
국내 최초 할인점, E-Mart 개점
1993년 11월 12일 가격파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국내 최초의 할인점 이마트가 창동에 개점했다. 할인점의 등장은 백화점과 재래시장이 주도하던 한국 유통업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식품 역시 싼 가격으로 대량 공급하여 소비자들도 가정마다 여러 날 또는 일주일 단위로 저렴한 가격으로 식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소비습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양조간장 701 출시ㆍ양조 국간장 출시ㆍ저염간장 출시ㆍ감염간장 출시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자:
HACCP 국내 도입
1995년 12월 25일 HACCP이 국내에 도입되었다.
※ HACCP이란?
원료, 제조,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위해한 물질이 식품에 섞이거나 식품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 과정의 위해요소를 사전에 확인·평가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사전예방적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이다.
※ HACCP의 역사
1959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비행사용의 완전무결한 우주식량 개발을 위해 Pillsbury사에 식품 제조 위생관리 체계를 개발 의뢰하였으며 그 결과로 HACCP이 만들어졌다. 1993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HACCP을 식품위생관리지침으로 채택, 적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각국에 HACCP 제도 도입을 권고하였다.
유통시장 전면개방
유통시장 전면개방으로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증가, 성장하여 판매 식품목이 더욱 다양해졌다.
경제 위기와 식탁의 간소화
IMF라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소비패턴은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반찬 수 줄이기, 시장 덜 가기, 외식 줄이기, 음료 또는 주류와 가공식품등의 구매 감소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식생활을 계획할 때 가장 고려한 요소는 가격이 되었으며 국내산 제품과 전통음식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국제규격에 발맞춤하다
1997년 ISO 9001인증을 시작으로 2000년 ISO 14001인증을 받으며 국제적인 표준제품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임을 인정받았다.
잘 만들기에서 맛있게 즐기기로:
요리 프로그램의 변신
요리법을 전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요리프로그램이 오늘날과 같이 ‘요리하는 즐거움’ 자체에 중점을 둔 예능 프로그램으로 본격 탈바꿈 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KBS 이정섭의 요리쇼(1997)
KBS 삐삐 요리방(1998)
MBC 맛있는 이야기(1998)
SBS 최고의 밥상(1998)
KBS냉장고를 열어라(2001)
SBS 결정! 맛대맛(2003)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 시작
샘표는 1998년 정기 공개채용을 시작하였다. IMF 외환 위기로 불어닥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구조 조정이나 인원 감축없이 오히려 사원모집 광고를 진행하였다. 이는 샘표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지역사회에 기여'라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食, 생존에서 즐거움으로
2000년대에 이르러 국민 소득이 $10,000에 가까워지며 의식주의 수준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은 신선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건강 기능 식품의 소비 또한 증가하였다. 한편 점점 바빠지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에 맞춰 테이크아웃, 1인 가구를 위한 가정간편식 등이 점차 발달했다.
한식의 DNA, 발효로 우리맛을 말하다
2001년 전통 한식간장을 복원해내는 데 성공한 샘표는, 발효를 기반으로 식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콩발효를 이용하여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요리에센스 연두를 개발하였고, 샘표 장 프로젝트,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샘표 장(醬) 프로젝트'라는 샘표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전통 조선간장을 복원하다
우리의 전통 방식이 그대로 담긴 한식간장에 대한 연구를 15년간 계속한 끝에, 전통적으로 선조들이 담가먹던 장맛의 비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당시 샘표는 콩알메주 공법 및 제조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우리맛의 근간이 되는 조선간장을 복원하였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샘표가 해야하는 한국식문화의 사명감으로 오랜 시간 집념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장류 최초 HACCP 지정
장류에는 HACCP제도 운영 의무가 없었지만, 샘표는 자발적으로 HACCP 기준을 도입하여 인증을 받았다. 이로써 샘표는 믿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드는 국민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잘먹고 잘 살자:Well-being 신드롬
사회 전반에 불기 시작한 웰빙 열풍이 식품에도 접목되며, 슬로우 푸드, 친환경(유기농)식품, 건강식품 등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2003년 1년 동안, 패스트푸드점의 점포 수가 브랜드별로 10%나 급감했다.
국제공인시험기관(KOLAS) 인증
KOLAS 인증이란 시험 기관이 특정 분야에서 품질을 분석하고 시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즉 샘표가 KOLAS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샘표가 분석한 장류의 품질 시험 결과는 국제적으로 신뢰하여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공인받은 것이다.
식문화 연구소 지미원 개원
식문화 연구소 지미원이 샘표 본사 10층에 개원하였다. 우리맛의 기본인 장(醬)에서부터 요리의 즐거움까지 배울 수 있는 지미원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였으며 셰프, 과학자, 인문학자가 협업하여 식재료 분석, 맛 테스트, 레시피 개발 등 많은 사람들이 우리맛을 즐길 수 있도록 식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대장금, 수랏상을 세계에 올리다
궁중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 대장금이 국내에서 60%가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로 인기를 얻으며 동아시아 각국에까지 수출되어, 우리 전통 음식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공장에 꽃핀 문화 예술 : 샘표 스페이스 이천 개관
2004년 11월, 샘표 이천 공장 내에 임직원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갤러리인 샘표 스페이스가 문을 열었다. 문화적인 혜택이 적은 직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식당 앞에 갤러리를 위치함으로서 일년에 10회 이상의 전시를 관람할 수있는 구조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직원,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전시 뿐 아니라 이천 지역 주민과의 연계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건강 스낵 브랜드, 질러 출시
'권태로운 일상에 불을 지른다'는 의미를 가진 건강 스낵 브랜드 '질러'를 출시했다.알땅콩, 고소한 아몬드, 표고버섯과 마늘 등 총 10종을 출시하면서 휴대가 간편한 컵모양의 팩키지로 신세대들의 인기를 끌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된장을 먹입시다:샘표 아이장 캠페인
창립 60주년을 맞은 2006년, 샘표는 아이장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하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장(醬)을 먹입시다'라는 슬로건 아래, 유기농 콩농장, 된장학교, 우리발효학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인 장(醬) 문화에 대해 올바르게 알리고자 하였다. 10년 간 꾸준히 장의 우수성을 알려온 샘표 아이장 캠페인은 2016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샘표 아이장 학교'로 명칭과 프로그램을 개편하여 우리 식문화를 알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문화로 고객과 소통하다:메세나 트렌드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전의 문화마케팅은 기업이 미술작품을 구입하고, 예술 인프라를 금전적으로 후원하던 기존 소극적인 지원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가 되기 시작하면서 각 기업들이 각종 문화 프로그램 제작에 직접 참여하거나, 예술가의 작품을 디자인으로 도입하는 등 예술을 고객과의 소통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더 푸르게, 더 건강하게
웰빙 열풍과 함께, 2000년대 후반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동물 관련 질병이 발생하면서 동물성 재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식물성 재료가 새로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세계, 발효에 주목하다
세계 정상급 셰프들과 해외 유수 언론인들에게 한식의 맛과 매력을 알리기 위해 '한국의 발효음식'을 주제로 하여 펼쳐진 푸드 페스티벌 '서울 고메 2010'. 샘표는 이 행사에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기업으로 참여하여 우리 발효의 맛을 소개하고, 세계로 나아갈 발효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우리맛 연구의 시작, 연두
한국의 맛내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그 첫 결과물인 요리에센스 연두를 선보였다. 연두는 콩을 자연발효한 100% 콩 발효 맛내기 제품으로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 요리의 제 맛을 찾아주는 요리에센스로 샘표가 75년간 연구해온 발효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건강하게, 즐겁게, 함께 먹는 밥: 소셜 다이닝의 등장
만혼의 일반화, 독신 인구 증가 등의 이유로 1인 가구의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소포장 단위의 식료품 판매가 활성화되고, 1인 고객을 위한 식당이 생겨나는 등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혼밥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나홀로 식사를 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즐거운 소통이 있는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욕구가 반영되어 소셜 다이닝이라는 새로운 식사 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이와 SNS을 통해 만나 함께 식사하는 소셜 다이닝은 바쁜 현대 사회 생활 중에도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관심사를 타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
샘표 이천 공장이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다. 회색 벽의 공장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신진 아티스트 그룹 ‘동방의 요괴들’과 함께 작업했다. 샘표 아트팩토리에는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공간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리 발효의 맛이 소비자의 식탁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샘표 장(醬) 프로젝트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한다'는 비전 실현을 위한 첫 걸음으로 2012년 샘표는 장(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한국의 맛인 발효를 통해 세계인의 식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 샘표 장(醬)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샘표는 스페인의 알리시아 요리과학 연구소와 협업하여 장(醬)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및 장(醬)을 유럽 현지 음식에 이용하는 방법을 도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한식, 고급을 입다
이탈리안, 프렌치 요리가 고급 다이닝의 주류를 이루던 2000년대 후반,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젊은 셰프들이 대거 귀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중 일부 셰프들은 서양에서 익혀온 모던한 터치를 한식에 적용한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양식 기법으로 조리하여 정교하게 담아내고, 장, 식초, 젓갈 같은 한국 고유의 맛을 더한 새로운 차원의 한식은 '뉴 코리안', 혹은 '모던 한식'이라고 불리며 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12년에는 뉴코리안 스타일 다이닝 ‘정식당’이 뉴욕에서 미슐랭 스타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샘표 75년 발효기술의 중심, 우리발효연구중심
충북 오송 생명과학단지 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발효전문연구소인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립하였다.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은 서울, 이천, 영동 등 각 분야별 연구조직을 통합하여 우리 식문화의 중심이 되는 발효를 통해 우리맛과 우리 건강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로 설립되었다. 특히 연구원들의 행복, 창의성에 중심을 두고 컨셉 및 디자인이 진행되어 새로운 개념의 연구공간으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샘표 맛있는 추억 캠페인
샘표는 2013년부터 '맛있는 추억'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맛있는 추억을 그리다/이야기하다/남기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 그림대회, 에세이 모음, 사진 모음 등을 진행하여 많은 가족이 참가하였다. 이 캠페인에서 선발된 어린이의 그림은 매년 샘표간장의 리미티드 에디션 라벨로 디자인되어 전국에 판매된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즐겁고 행복한 음식이 가장 맛있는 추억이 된다'는 의미를 가진 샘표 맛있는 추억 캠페인은 외부 전시까지 이어져 많은 호응을 받았다.
안방극장을 장악한 셰프테이너
2014년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명 셰프들이 출연하여 어느 집의 냉장고에나 있을 만한 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며 스타 셰프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맛집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넘어 셰프들이 예능에서 직접 요리하는 쿡방이 본격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으며 셰프와 엔터테이너를 합성한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집밥과 한식 레스토랑
바쁜 현대 사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유대감에 대한 그리움이 반영된 집밥이 식품업계의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집밥 열풍에 힘입어 기존 서양식이 장악하고 있던 뷔페식 시장에도 한식 레스토랑이 대거 등장하였다.
한식과 Culinary Research Method의 만남, 2016 샘표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
우리맛의 기본은 우리 장(醬), 발효이기에 우리의 DNA가 담긴 한식과 우리맛에 대해 연구하는 샘표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요리를 구성하는 요소인 식문화, 식재료, 조리법, 조리과학 각 분야 최고의 식문화 연구 멘토들과 샘표 우리맛 연구원들이 협업, Culinary research method를 이용하여 우리맛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다. 본 연구는 한식 셰프에게 유용한 정보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추후 조리를 배우고자 하는 전문인력에게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는 한식의 가치를 높이고 우리 식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샘표 우리맛 공간 오픈
샘표 우리맛 공간은 2003년 오픈한 샘표 식문화 연구소 ‘지미원’이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 공간이다. 우리맛의 가치를 공유하고, 맛있고 건강한 우리맛을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요리와 강연, 세미나, 다이닝, 각종 팝업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우리맛을 공유하고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다양한 요리 연구를 구체화하고, 모두가 더 나은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연두, 국제 자연식품 박람회 ‘올해의 혁신 제품’ 선정
연두는 ‘2018 국제 자연식품 박람회(Natural Product Expo West)’에서 ‘올해의 혁신적인 제품’에 선정됐다. 연두는 우리맛의 핵심인 콩 발효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 순 식물성 에센스로, 요리를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으로 ‘클린 라벨’(유기농, 논 지엠오(Non-GMO), 글루텐프리, 자연발효, 무합성첨가물) 조건을 충족시키고 맛이 훌륭하다는 면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아 890여 개 후보 제품을 제치고 국내 식품기업 최초로 ‘차세대 혁신 제품상(New Hope NEXTY Award)’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연두 ‘소비자가 뽑은 올해의 녹색상품’ 선정
연두가 ‘소비자가 직접 뽑은 2019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으로 선정됐다. 한국녹색구매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올해의 녹색상품’은 전문가·소비자환경단체·소비자 평가단 500여 명이 환경친화적 제품을 선정·시상하는 행사로, 연두는 이번 심사에서 콩과 국산야채 등 순식물성 재료만 사용한 자연발효제품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았다. 또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병을 용기로 쓰고 분리 배출이 가능한 라벨을 활용한 점도 환경개선효과 부분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통 아시안 소스 브랜드 '티·아시아' 론칭
'티·아시아'는 'Taste of Asia'라는 의미로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요리의 신비로운 맛과 향을 그대로 담은 정통 아시안 푸드 전문 브랜드이다. 아시아 여행을 하는 인구가 늘면서, 현지에서 먹었던 음식 맛 그대로 집에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를 담았다. '티·아시아'의 ‘티(T)’는 맛있는(Tasty)의 T를 의미하며, 로고 디자인 또한 왕궁, 사원 등 아시아 현지 전통 건축물의 문양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
온라인쇼핑 확산
1~2인 가구 증가, 간편결제 서비스 발전, 배송 서비스 강화는 온라인 쇼핑의 지속적인 확산을 불렀다. 바쁜 일상 속, 집에서 편하게 HMR 식품을 배송받아 간편하게 먹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대면을 선호하는 20·30대는 대형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과 편의점을 선호함에 따라 타깃과 품목에 따른 다양한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집밥 트렌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글로벌 확산은 한국 식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나타난 비대면 트렌드로 인해 혼밥문화가 확산되고 외식은 감소하였다. 또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HMR과 집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새벽 배송 등 온라인 쇼핑이 20•30세대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무인화, 자동화,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
'박진선 대표' 금탑산업훈장 수훈, 2대째 영예
2020년 샘표는 20년 만에 산업계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재수훈했다. 2000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박승복 회장님에 이어, 2대째 산업계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진기록이다. 이번 수훈은 샘표가 글로벌 매직 소스인 요리에센스 연두를 개발하는 등, 20년 동안 우리 발효를 전 세계로 알리는데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즐거운 요리 혁명, 새미네부엌 브랜드 런칭
75주년을 맞아 5년 간의 우리맛 연구 결과로 요리의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새미네부엌 브랜드를 런칭했다. ‘즐거운 요리 혁명’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처럼 요리가 놀이처럼 즐거워지는 제품들을 선보인다.
'티·아시아' 제품 다양화
동남아 대표요리를 손쉽게 맛보게 하는 요리 소스에 이어 인도와 태국의 색다른 커리, 라씨, 난 등 제품을 다양하게 확장하였다. 신제품들 역시 인도 왕실 요리 셰프인 라릿 모한(Lalit Mohan)과 타이, 동남아 왕실 요리 셰프인 피수티삭 부라나싱(Phisuthisak burana sangha)이 '티·아시아' 연구원들과 2년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탄생했다. '티·아시아'는 향후 아시아의 대표 요리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색다른 맛의 다양한 제품으로 브랜드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